마인드닥터컬럼
내용
도둑당할 것인가? 도약할 것인가?
새해가 되면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워본다. 그런데 올 해는 경제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하니 답답한 마음도 든다. 힘든 시절은 처음이 아니기에 기축년의 누런 황소처럼 묵묵히 나아가야겠지. 이런 우리의 모습은 영원히 돌을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가 생각나게 한다. 삶이란 다시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돌을 정상으로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와 무에 다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시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서 신화에 나오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교활하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아들이며 도둑의 신인 아우톨리코스의 사기에 속지 않았고 제우스의 처녀보쌈을 아가씨의 아버지에게 알려주었으며 그 벌로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마저 재략으로 가두어서 죽음을 피했다. 신들을 능멸한 벌로 죽은 뒤에(물론 실컷 장수를 누린 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야하는 벌을 받았는데, 그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니까 고난한 삶의 대명사인 시시포스가 친근하게 느껴지며 영웅으로 다가온다. 교활하다는 것은 신들의 입장이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희롱하는 신들의 횡포에 당당하고 재치 있게 대항한 이 인간영웅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인간의 운명의 원죄 같은 우리의 시시포스를 닮고 싶다. 그렇다면 우선 시시포스의 당당함을 떠올려보자. 신들의 왕 제우스의 비행을 알렸던 당당함 말이다.
계속 돌을 떠밀고 올라가고 있을 그는 지금도 의연한 모습일 것 같다.
우리도 운명 앞에, 그리고 지금의 시련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IMF시절의 무거운 바위가 지금 다시 우리에게 떨어지고 있지만 당당하게 부딪친다면 우리도 해보았다고 그에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당하려면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어야겠다. 만약 지난해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여 한탄한다면 이 부끄러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당신은 그 시간에 각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펼쳐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敵은 모습을 달리하여 시련들을 보내는 神들 이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앞에 있는 경쟁자들이 적이라면 어떻게든 물리치면 살아남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뒤에 나동그라진 그 사람은 우리 자신 일수도 있다. 다시 보니 상대는 타도할 적이 아니라 상생의 마음으로 손을 잡을 동료인 것이다. 서로 같이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진짜 적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도 있다. 당당함과 서로 상생하는 협동의 마음을 새해 벽두부터 끝까지 가져간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면 즐겁게 여기는 것은 어떨까?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벌이는 전쟁과도 같은 생활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려면 열정과 몰입이 필요하다. 밥벌이에서도 열정으로서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은 다 알고 있으실 것 같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갈수록 움츠려지는 우리들이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으므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어 참으로 좋겠다.
아우톨리코스는 시시포스의 소들을 훔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소들의 형태나 색깔을 바꾸었다. 하지만, 시시포스가 지혜롭게 미리 소 발굽에 찍어 놓은 표시 때문에 발각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소를 훔치러 오는 도둑은 무력함이라는 옷을 입고 후회와 자책이라는 신발을 신고 비관적 생각과 이기심의 얼굴을 한 모습일 것이다. 한해를 포기하려면 황소를 잃어버려도 상관이 없겠으나 기축년은 어쩌면 우리 일생에서 최고의 한해가 될 수도 있다. 자, 우리 모두 소의 발굽에 낙인을 분명히 찍자. 그리고 당당함과 협동의 정신, 열정과 몰입을 우리 가슴에 담는다면 소의 등에 올라타서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상일보 '경상시론'- 1월)
새해가 되면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워본다. 그런데 올 해는 경제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하니 답답한 마음도 든다. 힘든 시절은 처음이 아니기에 기축년의 누런 황소처럼 묵묵히 나아가야겠지. 이런 우리의 모습은 영원히 돌을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가 생각나게 한다. 삶이란 다시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돌을 정상으로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와 무에 다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시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서 신화에 나오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교활하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아들이며 도둑의 신인 아우톨리코스의 사기에 속지 않았고 제우스의 처녀보쌈을 아가씨의 아버지에게 알려주었으며 그 벌로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마저 재략으로 가두어서 죽음을 피했다. 신들을 능멸한 벌로 죽은 뒤에(물론 실컷 장수를 누린 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야하는 벌을 받았는데, 그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니까 고난한 삶의 대명사인 시시포스가 친근하게 느껴지며 영웅으로 다가온다. 교활하다는 것은 신들의 입장이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희롱하는 신들의 횡포에 당당하고 재치 있게 대항한 이 인간영웅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인간의 운명의 원죄 같은 우리의 시시포스를 닮고 싶다. 그렇다면 우선 시시포스의 당당함을 떠올려보자. 신들의 왕 제우스의 비행을 알렸던 당당함 말이다.
계속 돌을 떠밀고 올라가고 있을 그는 지금도 의연한 모습일 것 같다.
우리도 운명 앞에, 그리고 지금의 시련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IMF시절의 무거운 바위가 지금 다시 우리에게 떨어지고 있지만 당당하게 부딪친다면 우리도 해보았다고 그에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당하려면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어야겠다. 만약 지난해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여 한탄한다면 이 부끄러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당신은 그 시간에 각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펼쳐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敵은 모습을 달리하여 시련들을 보내는 神들 이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앞에 있는 경쟁자들이 적이라면 어떻게든 물리치면 살아남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뒤에 나동그라진 그 사람은 우리 자신 일수도 있다. 다시 보니 상대는 타도할 적이 아니라 상생의 마음으로 손을 잡을 동료인 것이다. 서로 같이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진짜 적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도 있다. 당당함과 서로 상생하는 협동의 마음을 새해 벽두부터 끝까지 가져간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면 즐겁게 여기는 것은 어떨까?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벌이는 전쟁과도 같은 생활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려면 열정과 몰입이 필요하다. 밥벌이에서도 열정으로서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은 다 알고 있으실 것 같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갈수록 움츠려지는 우리들이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으므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어 참으로 좋겠다.
아우톨리코스는 시시포스의 소들을 훔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소들의 형태나 색깔을 바꾸었다. 하지만, 시시포스가 지혜롭게 미리 소 발굽에 찍어 놓은 표시 때문에 발각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소를 훔치러 오는 도둑은 무력함이라는 옷을 입고 후회와 자책이라는 신발을 신고 비관적 생각과 이기심의 얼굴을 한 모습일 것이다. 한해를 포기하려면 황소를 잃어버려도 상관이 없겠으나 기축년은 어쩌면 우리 일생에서 최고의 한해가 될 수도 있다. 자, 우리 모두 소의 발굽에 낙인을 분명히 찍자. 그리고 당당함과 협동의 정신, 열정과 몰입을 우리 가슴에 담는다면 소의 등에 올라타서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상일보 '경상시론'-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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