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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어느 60대 고부부의 이야기

작성자
마인드닥터
작성일
2012.05.0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245
내용

 

곱고 희던 그 손으로넥타이를 매어주던 때어렴풋이 생각나오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막내 아들 대학시험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어렴풋이 생각나오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이제는 모두 말라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세월이 흘러감에 흰 머리가 늘어감에모두가 떠난다고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가요의 노랫말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결국 두 번째 들었을 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나이에 아직도 영화나 노래를 들으며 울컥하는 내가 감수성이 비정상적으로 풍부한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그런데 가수 고 김광석님도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노래의 작곡,작사자인 실력있는 블루수 가수 김목경씨는 영국유학 당시 옆집 노부부를 보며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광석씨는 이 노래에 마음을 뺏겨 ‘다시부르기’ 앨범에 이 노래를 실었다. 그래서, 김목경 버전과 김광석 버전이 있다. 김목경씨도 말했지만 60대는 노부부라고 부르기에는 지금이 장수시대에는 젋어서 어색하다. 그래서 나도 노부부가 아니라 오래된 부부, 즉 古부부라고 하고 싶어 수필제목도 그렇게 해 보았다.

 

나는 노부부가 손을 잡고 다정히 산책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참 곱게 늙어 들 가시는 구나, 하며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 부부가 넥타이를 매어주는 알콩달콩한 신혼의 그 시간에서 영감을 (할망을) 먼저 보내야 하는 해로의 그 끝자락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과 시련들을 같이 해야 했는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  영상들이 보이는 듯하다.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낼 적에, ‘잘 가시오‘를 거듭 말씀하실 적에 이런 애절한 마음이었을 거다. 모두 떠나가고 둘이 백발이 되면서 서로를 의지했었다. 오랜 세월 무던히 속도 썩히고 무심한 당신으로 인해 마음의 생채기가 있었다. 이제는 늙어서 다정해진 당신의 모습을 보며 ’약해졌구나‘ 마음이 아프면서도 고마웠다. 이제 이 빈집에 둘이서 오래 살아보려 했건만 이렇게 떠나가시오 하는 현실을 담고 이 노래는 말하는 듯하다 .

 

부부가 쭈그러진 손들을 서로 잡고 옛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보통 내공이 아니라고 본다. 남녀가 서로 끌리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상대를 보면 내가 사랑하던 그 인간이 아니다. 속았다, 변했다고 상심하고 분노하는데 변한 거는 없지 않는가. 그냥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것만 보고 잠시 이심동체의 환상에 빠지는 것이 결혼의 비극의 시작이 아닌가. 너의 배신으로 나의 사랑이 아프다며 상대가 다시 바뀌기를 바란다. 바뀌지 않으니 내가 우울하고 아프다며 정신과 진료실로 찾아오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십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이들의 하소연들이다. 가슴에 멍이 들었다, 자식들 보고 산다, 시아버지와 똑같이 가족들을 술과 폭력으로 괴롭히는 남편과 평생 자기말만 듣도록 강요하는 이 남자로 인해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백발이 되어가는 노년일수록 삶의 경험에서 진국처럼 우러나오는 기막힌 말씀들을 하신다. 실컥 홧병으로 고생하다 이제 나아지니까 그런 무섭고 난폭한 남편의 마음에 어린 남자아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 하던 그 60대 후반의 고운 여성이 기억이 난다. 은발의 그 영감이 이제는 불쌍해지는 궁휼의 마음이 된다고 말하는 그 노부인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할머니가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어 항상 에스코트를 하며 같이 오시는 70대 할아버지가 있다. ‘울산의 고위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은퇴할때까지 할망구를 많이 힘들게 했지... 집에 와서도 내 부하 직원을 다루듯이 군림하며 부드럽게 잘해준 적이 없었어... 이제라도 내가 다 해줘야지, 저 홧병은 내가 만들었으니까.’ 고 하는 이분의 얼굴도 평화로웠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면서 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줄줄 흘렀다. 치매인 부인(김수미分)을 간병하며 지극한 장군봉 할아버지(송재호分) 와 독재자가장으로 살다가 암으로 부인을 먼저 보내고 노년에 너무 착한 순이 할머니를 만나 조심스러운 사랑을 하는 할아버지(이순재分)가 나온다.
치매인 부인이 암말기까지 겹치면서 장군봉할아버지는 자식들을 다 부른다. 행여나 이제 합치자고 할까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자식들을 앞에 두고 할아버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에게 ‘저게 다 당신의 뱃속으로 나온 자식들이다.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정말 수고 많았다’ 라고 하고 바로 자식들을 돌려보낸다. 가난한 막내딸에게 전재산을 처분한 돈을 쥐어주고. 그날 밤 할아버지는 한평생 잡아주었던 그 손으로 수면제를 타서 눈물로 먹이고 연탄가스를 피운다.
그리고 순이 할머니는 독재자할아버지를 좋아하지만 프로포즈를 받자 이별과 사별이 두려우니 그냥 좋은 기억으로 여생을 살겠다며 부부의 인연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보내줄 수 밖에 없었던 늙은 남자는 결국 나중에야 늦었던 사랑을 이룬다. 운명할 때 그녀와 기쁘게 만나서 아름다운 저곳으로 같이 가며 가만히 미소 짓는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 


내가 운 것은 그 노인들에 대한 동정의 복받침일까 아니면 그 노인들의 절절한 사랑에 감동해서일까. 애잔과 감동이외에 뭔가 서러운 느낌도 분명 있었다. 그렇다, 참으로 사람의 삶이 공통으로 가지는 설움의 길이 참으로 서럽다. 그래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영국의 그 노부부에게, 장군봉할아버지 부부에게, 나에게 오시는 그 70대 노부부에게, 오늘 길에서 보았던 그 쓸쓸한 뒷모습의 초라한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늙어갈 나와 내 와이프에게, 아니 인간들 모두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런데, 손을 잡고 다정히 걸어가던 그 노부부의 얼굴은 평온했었다. 그리고 노래에서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하던 영감님은 자기 손을 꼭 잡던 할멈이 ‘다시 못 올 먼 길’을 떠나는 것을 ‘안녕히 잘 가시게’ 하며 보낸다. 다음 생에서 보게 될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같이 살아줘서 고맙소, 내 뒤따라 가리다’ 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러한 마음들에는 애잔과 서러움을 이겨낸 그 무엇이 있다. 우리의 한恨에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통찰이 아니라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 풀며 그 숙명을 받아들이는 가슴으로 통찰하는 승화가 있다.
혼자 남은 생을 할 수 없이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 말고, 같이 있어도 나에게 맞춰주기를 바라는 어린 마음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찰나같은 삶에 감사하고 승화하며 떠날 수 있는 그런 노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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