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닥터컬럼
그 부부께서 들어오신다. 심리적 외상으로 우울증(홧병)이 심하여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지셨는데 오늘은 두분 다 안색이 어둡고 연신 한숨이다.
"딸애와 사위가 짐 싸들고 울산으로 내려왔어요. 딸은 친정에 오니 이제 살았다고 안도하지만 아직도 악몽 꾸고 잘 놀래며 예전 기억으로 공포에 떨어요. 사위는 워낙 성장과정이 부모로 부터 학대를 받으며 불우했고 고통을 외면하려고 하는 등 좀 이상해요. 원장님께 예약해놓았으니 두 아이가 오면 치료를 부탁드릴께요. 불쌍해 죽겠어요, 흑-흑~
간단히 사연을 들었기에 그 젋은 신혼부부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고 예약날인 다음날을 기다렸다.
따님을 둔 나의 환자분들인 60대 그 부부는 아버지와 부랄친구와 사돈을 맺기로 하였고 두 청춘남녀도 서로 좋아했기에 결혼을 시킨 터였다. (부랄친구라 함은 욕이 아니라 ^^ 불거 못볼거 다 본 아주 친한 친구를 말함, 이렇게 친한 여자친구들은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네.)
다음날 방문한 두사람으로 부터 그동안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시집을 가보니 시집살이가 너무 혹독하여 며느리 역할이 너무 힘들었기에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다. 시어머니 되시는 분이 따뜻하게 정을 주지 않으시고 엄하시기만 한 것은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로 인한 공포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가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며 식구들의 의사나 생각은 존중해주지 않는 아버지. 자신의 뜻을 거역하면 누구도 용서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고 쫒아내었으며 가족을 '짐승'처럼 다루었다.
이렇게 유아독존의 다혈질 남편의 옆에서 배우자는 투쟁하거나 이혼을 하느냐 매맞는 아내로서의 삶을 '자식때문에 참고 사는 팔자'라며 수용하느냐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 어머니는 뛰쳐나가지 못했고 자식들의 앞에서는 달래고 남편을 같이 원망하면서 남편이 아이들을 학대적훈육을 할 때에는 나서지 못하고 방관하였다.
아버지는 아들 둘을 자신의 사업체에 직원으로 두면서 다른 직원들 앞에서 야단치며 모멸감을 주고 때리기까지 하여왔다. 사위인 남성은 2남1녀의 막내인데 가끔 작은 반항이나 피하기도 하지만 맏이인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아주 순종적이며 거르친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다. 딸은 (40세) 시집을 가지 않고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데 동생과 올케에 대한 감시와 공격의 대리인역할을 하며 표독스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이 가족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병든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3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세상은 먹지 않으면 먹히는 냉정한 곳이라는 뼈아픈 인식으로 자수성가하였다. 이 사람의 눈에는 주위에 썩어빠진 정신으로 밥만 축내는 인간들이 한심할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들은 자기가 없으면 살아나가지 못하는 것들이어서 보호해주는데 자신의 말을 법으로 여기며 살아가야하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도 절친의 딸이라도 자신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이다.
큰아들은 대개의 엄부 밑의 맏이가 그렇듯이 자기주장 없이 '효자'라는 자기변명으로 순종하는데 아버지에게 대한 공포가 크다. 그리고 또한 분노도 엄청 날것이다. 이 분노는 굉장한 힘으로 누르고 있어서 잘 드러내지 않고 아주 온순한 얼굴로 살아가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딸의 경우는 아버지와 엄마와 맺는 관계와 너무 공생적인 관계가 되어버려서 독립을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심각한 문제라고 추정해볼수 있다. 결혼 안하는데 일은 하고 있지 않고 나이가 들어도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 경우는 십중팔구 부모봉양이 아니라 부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일 것이다. 엄마와 애증의 관계이면서 떨어지지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크면서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없는 성장하지 못하는 딸인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통해 사회와 세상을 각인해간다. 이 남자가 말하고 보여주는 세상이 무섭고 냉정한 것이라면 아이들은 그렇게 각인되어 대인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할 때 공격적이거나 아주 소심하고 회피적인 모습의 양 극단적인 세상에 대한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젋은 부부의 경우, 아내는 남편을 걱정하는데 ' 중요한 문제인데도 어처구니 없이 잊어버리고 옆에서 보기에 저런 경우를 당하면 엄청 힘들텐데도 본인은 마치 남의 일 보는 것처럼 고통을 못 느끼는 모습, 억울하고 분해도 화를 내지 못하다가 사소한 일에 크게 짜증을 내는 것' 이 정말 비정상인 모습이라 고민되요, 치료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이 남자처럼 찔림을 당하는데도 무기력하게 반응을 못하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표현한다. 유명한 실험이 있다. 우리 안에 개들을 넣고 서로 다른 자극과 환경을 주었는데 1. 어떤 자극도 주지 않고 가두어 놓았다. 2. 전기자극으로 고통을 주었는데 페달을 밞으면 그 전기자극이 끊어지도록 했다. 3. 전기자극을 주면서 어떤 반응을 개가 보여도 전기자극과 고통이 없어지지 않도록 했다. 나중에 우리의 문을 열고 풀어주었을 때 1, 2의 개는 쏜살같이 도망을 갔지만 3의 개는 도망가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늘어져있었다. 이 실험은 자극과 위협을 받았을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포기를 하게 되고 나중에 기회가 와도 깨닫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된 것이다.
개들의 경우이지 우리 인간의 행동에 적용을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우리들 사람들의 살이에서 나쁜 환경이나 학대에 의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무기력해 질수 있는지를 정신과의사들과 치료자들은 많이 보아왔다. 셀리만이 한 이 실험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학습이나 적응 행동에서 실패의 경험이 지나치게 누적되는 경우 학습된 무기력으로, 연습에 의해서 향상할 수 있음에도 어떠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과 능력의 스펙트럼은 유약하고 무기력한 단계에서 초인적인 능력과 부처같은 궁휼의 마음까지 엄청 넓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연약하고 이기적이며 행동심리학의 동물실험에서 동물의 반응과 비슷함을 확인하며 씁쓸해진다. 그런데 진실은 동물의 반응보다 더 최악의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환경을 극복하는 훌륭한 영웅같은 사람들이 있지만 단순한 동물의 반응보다 더 치명적인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바로 대를 이어서 불행과 상처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동물은 그렇지 않다.
이 사례에서 시아버지가 되는 이 남성은 홀어머니와의 고생을 딛고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성공은 자신이 만든 가족들에게 물질적 혜택은 주었겠지만 역경을 극복한 지헤와 내리사랑은 주지못하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우리 안에서 길들이고 이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남자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부자관계의 가장 큰 희생양으로 보이는 순응하는 큰아들은 가정을 이루면 어떤 아버지가 될까. 자신이 보아온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여 자애로운 아버지가 될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거의 대개 그렇지 못한 것이 비극이다. 난 정신과의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받지 못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순종적이며 타인들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남자는 겸손하고 양보하며 자신을 낮추는데 이들의 내면에는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분노를 누르고 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고무공의 공기가 새지않게 입구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상태이다. 이걸 누르느라 힘이 빠지고 다른 것을 할 여유가 부족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말이 없고 가족에 관심이 부족하다. 낮동안 눌려진 (스스로 눌린) 자존심이 가장의 권위로 올라오면서 가정에서는 엄하고 배려가 부족한 피해의식이 가득찬 모습이 되고 만다. 터지지 않도록 누르는 것이 힘들었기에 좋은 스트레스 해소가 술임을 경험해보면 이런 남자들이 술에 의존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술 취하면 눌려져 있던게 풀려서 큰소리를 치고 공격적인 반대의 모습, 지킬에서 하이드가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저자세이며 감정표현을 잘 못하고 억제하는 40,50대 남성, 술 에 자주 의존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우리 시대의 슬픈 남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아버지들의 아이들은 또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으며 성장해서 결혼하면 난 아버지처럼 안 그래야지 하지만 또 그렇게 되겠지. 심각한 이유는 이처럼 대를 이어 가며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의 따님이 결혼을 한다면 어떤 어머니의 모습이 발현되어 나올 수 있을까. 희망적이지 않은 것이 답답하다.
이제 이 젋은 커플을 상담치유해야 하는데 ... 어려서 가정의 가장 낮은 곳에 있어 당할수 밖에 없었고 이제 성인이 되어 달라질것 같지만 이도 쉬운게 아니다. 몸만 어른인 사람들도 많고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경제적 능력 등 여러 면에서 부모를 극복하기가 무지 어렵다. 그래서 난 부모에게 그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경을 밝히고 ( 부모의 변화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헤어짐의 시작이기에 ) 부모로 부터 독립해 떠났던 내 기억속의 그 젋은이들이 참으로 대견하였고 안아주고 싶었다.
이처럼 관계치유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passing through 가 거의 불가능하다. 떠나는 것일뿐.
물론 오랜 세월 마음 안에 고인 불안증, 우울증, 대인관계패턴, 친밀감 다루기, 적절히 화를 내고 자기주장 하기 등에 대한 치유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독이 된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적인 심리적인 독소와 정서적 상처를 들여다보는 자기점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싶다. 자기 아이들이 자신처럼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들은 좋은 부모일까. 최소한 독이 되는 부모는 아니겠지. 훈육이라 여겼던 것이 독소는 아니었는지 참 자신이 없어지는 마음이 든다, 이런 사연을 접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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