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닥터컬럼
내용
노무현 前 대통령과 국민의 우울증
온 국민이 충격의 사건을 접한 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우리 국민들은 전 국가원수의 자살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겪어야 했다. 고인이 이승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비통하고 허탈한 심정이었고 이런 우리의 정치현실에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필자는 자살이란 말을 많이 듣는 정신과의사란 직업으로서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려고 노력해왔다. 생을 포기하려는 삶의 끝자락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절망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마음으로 한 번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충고들을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놓여있다면 이러한 의욕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암담함 뒤의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볼 수 없는 병적 상태이다.
고인이 우울증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 것들은 몇 가지 있다. 특별한 지병이 없었는데도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상태,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더구나, 가족과 측근들이 자신으로 인해 줄줄이 조사와 구속을 당하는 현실을 겪으면서 죄책감이 극도로 커졌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고인의 모습에 안타까웠겠지만 우울증이라고 여기지 못했을 것이고 더구나 치료를 받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슬픔과 절망, 우울증 등의 감정은 그 정도의 차이이지 그 감정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살면서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통령이든, 일반 서민들이든.
우울증에 놓여있는 이들이 또 있는데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많은 이들이 봉화마을을 향하고 각지에서 참배하며 깊은 애도를 보였다. 이런 슬픔의 격랑을 보면서 정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나친 감정적인 모습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있다. 서거 이전까지 고인과 결별하고 거리를 두며 비판하던 정당과 일부언론들이 서거이후 돌변하는 태도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지나친 오버액션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경우에는 감정에 치우친 분별없는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노 무현 前 대통령, 그의 삶은 최후까지도 너무 극적으로 드라마 같아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되는 것 같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 그는 너무 감성적이고 탈 권위적이며 타협을 하지 않고 권력기관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 영숙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다음 세상에서는 정치를 하지 마시라고 목메어 부탁하였다.
이런 맑고 곧은 성격은 현재의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맞지 않으며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그동안의 정치인들에 진절머리가 나있던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도덕성에 결함을 입고 온 몸을 내던지는 진정성에 사람들은 가슴으로 울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해본다. 일생 어려운 고비마다 결단을 하고 우직하게 실행했던 그이기에 이번에도 정면 돌파를 했다면? 국민에 사죄하고 받은 돈을 내어놓고 굴욕의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있는 것은 그에게 죽는 것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까? 하지만 ‘우파와 좌파, 기득권과 노동자, 정치와 검찰’ 등의 의미보다 더 값지고 큰 틀인 ‘생명, 환경, 평화’ 를 위해 행동하며 계속 우리 옆에 존재하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다.
이제 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이 상처를 받아들여야 하나? 반성을 하고 용서를 구할 일부언론이 가장 먼저 용서와 화합의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우리 국민들의 우울증은 치유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켜보아도 현 정치권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결국, 우리 스스로 치유해야 할 것 같다.
심리적 상처의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처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리라. 이번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와 현대사에서의 의미도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개인적인 성찰과 사회적인 공적 절차로 구체화 되면 좋겠다. 차분히 절제된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작업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사나운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위해서 용서와 화합의 신명나는 놀이로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 경상일보 2009. 6.11 '경상시론' )
온 국민이 충격의 사건을 접한 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우리 국민들은 전 국가원수의 자살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겪어야 했다. 고인이 이승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비통하고 허탈한 심정이었고 이런 우리의 정치현실에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필자는 자살이란 말을 많이 듣는 정신과의사란 직업으로서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려고 노력해왔다. 생을 포기하려는 삶의 끝자락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절망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마음으로 한 번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충고들을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놓여있다면 이러한 의욕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암담함 뒤의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볼 수 없는 병적 상태이다.
고인이 우울증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 것들은 몇 가지 있다. 특별한 지병이 없었는데도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상태,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더구나, 가족과 측근들이 자신으로 인해 줄줄이 조사와 구속을 당하는 현실을 겪으면서 죄책감이 극도로 커졌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고인의 모습에 안타까웠겠지만 우울증이라고 여기지 못했을 것이고 더구나 치료를 받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슬픔과 절망, 우울증 등의 감정은 그 정도의 차이이지 그 감정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살면서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통령이든, 일반 서민들이든.
우울증에 놓여있는 이들이 또 있는데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많은 이들이 봉화마을을 향하고 각지에서 참배하며 깊은 애도를 보였다. 이런 슬픔의 격랑을 보면서 정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나친 감정적인 모습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있다. 서거 이전까지 고인과 결별하고 거리를 두며 비판하던 정당과 일부언론들이 서거이후 돌변하는 태도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지나친 오버액션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경우에는 감정에 치우친 분별없는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노 무현 前 대통령, 그의 삶은 최후까지도 너무 극적으로 드라마 같아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되는 것 같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 그는 너무 감성적이고 탈 권위적이며 타협을 하지 않고 권력기관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 영숙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다음 세상에서는 정치를 하지 마시라고 목메어 부탁하였다.
이런 맑고 곧은 성격은 현재의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맞지 않으며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그동안의 정치인들에 진절머리가 나있던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도덕성에 결함을 입고 온 몸을 내던지는 진정성에 사람들은 가슴으로 울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해본다. 일생 어려운 고비마다 결단을 하고 우직하게 실행했던 그이기에 이번에도 정면 돌파를 했다면? 국민에 사죄하고 받은 돈을 내어놓고 굴욕의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있는 것은 그에게 죽는 것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까? 하지만 ‘우파와 좌파, 기득권과 노동자, 정치와 검찰’ 등의 의미보다 더 값지고 큰 틀인 ‘생명, 환경, 평화’ 를 위해 행동하며 계속 우리 옆에 존재하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다.
이제 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이 상처를 받아들여야 하나? 반성을 하고 용서를 구할 일부언론이 가장 먼저 용서와 화합의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우리 국민들의 우울증은 치유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켜보아도 현 정치권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결국, 우리 스스로 치유해야 할 것 같다.
심리적 상처의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처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리라. 이번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와 현대사에서의 의미도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개인적인 성찰과 사회적인 공적 절차로 구체화 되면 좋겠다. 차분히 절제된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작업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사나운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위해서 용서와 화합의 신명나는 놀이로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 경상일보 2009. 6.11 '경상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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